항목 ID | GC40006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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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午砲山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오포산」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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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오포산」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오포산 -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원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풍수지리설|음양오행설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 있는 오포산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오포산」은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에 있는 오포산(午砲山)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오포산」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오포산은 일제강점기 때 산 위에서 대포를 쏘아 정오를 알렸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봉우리가 동그란 산이었으나, 6·25전쟁 이후 미군 통신대(通信隊)가 주둔하면서 봉우리를 깎아 현재와 같은 언덕 모양이 되었다. 정월대보름에는 산에 올라 달구경을 즐겼다고 하여 ‘월견산(月見山)’이라고도 하였다.
산 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서 ‘자라바위산’이라고도 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돌거북이 머리를 남쪽으로 묻어 비슬산(琵瑟山)에서 이어지는 지맥(地脈)을 연결하였기 때문에 ‘연구산[連龜山]’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한편, 『영남전설지』에 의하면, 오포산은 비슬산, 용두산(龍頭山), 수도산(水道山)과 함께 화산대(火山帶)로 이어져 있어서 화재가 잦은 곳이라고 한다. 고을 원(員)이 물로 불을 다스린다고 하여 용두산에 얼음 창고를 만들고, 산의 서쪽 기슭에 석빙고를 설치한 후, 물을 상징하는 자라 모습의 바위를 산 정상에 안치한 후부터 화재가 없어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오포산」은 지명유래담과 풍수지리설, 음양오행설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