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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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塔- 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탑동네의 유래」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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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탑동네의 유래」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탑동네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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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일본군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자연부락 탑동네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탑동네의 유래」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자연부락 탑동네와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탑동네의 유래」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남대구우체국 뒤편에 있는 자연부락 탑동네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대명동에는 말탑, 개탑, 큰탑 등 세 개의 충혼탑(忠魂塔)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큰탑은 일본군 전사자의 위령을 두어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는 장소였다. 그래서 ‘탑(塔)동네’로 불렀다. 해방 후 충혼탑은 없어지고 6·25전쟁 때는 미군통신소가 주둔하였으며, 휴전 후에 철거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탑동네는 대명동 대구고등학교 건너편 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이 형성되기 전에는 야산이었는데,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하여 ‘탑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참나무가 많아서 ‘참나무배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탑동네의 유래」는 지명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