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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록 관련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258
한자 壬辰錄 關聯 -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석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 「임진록 관련 이야기」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박영서
모티프 유형 이인담|의마담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전하여 오는 임진록 관련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임진록(壬辰錄) 관련 이야기」는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임진왜란(壬辰倭亂)[1592]이 일어나자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하여 세 명의 대신이 중국으로 갔다. 날이 저물어 천태산(天台山) 마고할미가 나타나 한 장의 화상(畫像)을 주며, 반드시 이 화상의 장수를 황제에게 청하여 함께 돌아와야 한다고 하였다. 사신들이 황제를 알현하고 화상의 장수를 내어 줄 것을 청하니, 황제가 이여송(李如松)[?~1598]을 내주었다. 이여송이 압록강(鴨綠江)에 도착하였을 때 용의 간을 옥쟁반에 받쳐 소상강(瀟湘江)의 저(箸)와 함께 올리지 않으면 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에 한 대신이 하늘을 보고 탄식하자 구름 사이로 나타난 용이 땅으로 떨어졌다. 다른 대신이 가지고 있던 옥쟁반과 소상강 저를 함께 올렸더니 이여송이 강을 건넜다.

왜장을 죽인 이여송은 조선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품고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하루는 이여송 앞으로 초립둥이 하나가 소를 타고 지나가기에 이여송이 멈추라고 하였으나 초립둥이는 이여송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여송이 칼을 든 채로 말을 타고 쫓아갔으나 초립둥이를 따라잡지 못하였다. 이여송이 지쳤을 때쯤 초립둥이가 돌아보며 “네가 조선을 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내 손에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이여송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조선은 다시 태평하게 되었다.

3년쯤 뒤에 일본이 침략의 기미를 보이자 박영서와 이화덕 장군을 출병시켰다. 군대가 부산에 진주하여 이튿날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강신(江神)이 나타나 내일 전쟁에 나가면 몰사할 것이니 며칠 더 머물러 있다가 가라고 하였다. 박영서가 이화덕에게 강신의 이야기를 전하였으나, 이화덕은 귀신 이야기를 믿어서야 되겠느냐고 하며 이튿날 출전을 강행하였다. 그 탓에 병사들은 모두 죽고, 두 장수는 포로가 되어 일본 왕에게 잡혀갔다. 일본 왕은 이화덕을 자신의 딸에게, 박영서를 자신의 동생에게 장가보냈다. 장가가던 날 두 장수는 3년 안에 일본 왕의 목을 베어 귀국하기로 언약하였는데, 이화덕은 부인에게 빠져 일본에서의 생활에 안주하였다.

3년 되기 바로 전날 박영서가 이화덕에게 3년 전의 맹세를 말하자 이화덕이 박영서를 밀고하여 그만 붙잡히고 말았다. 박영서가 죽기 전에 오랜 친구인 이화덕과 마지막으로 술 한잔 나눌 수 있게 하여 달라고 하였다. 이화덕과 술을 마시는 자리가 마련되자 박영서는 칼을 들어 이화덕을 베고 자신도 자결하였다. 박영서의 말이 박영서가 아내에게 보내는 서찰과 박영서의 목을 물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서찰을 펼쳐 보니 “편지와 함께 자신의 목을 옥함에 넣어 임금님께 가져가라.”라고 씌어 있었다. 임금이 서찰과 박영서의 목을 보고 박영서의 아내를 정절부인(貞節夫人)에 봉하고, 박영서에게도 높은 벼슬을 추증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임진록 관련 이야기」는 이인담(異人譚)과 의마담(義馬譚)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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