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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손수재 처눌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457
한자 次 孫秀才 處訥韻
영어공식명칭 Reply To A Poem Written By Son Cheo-nul
이칭/별칭 「손처눌의 시에 차운하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32년 1월 9일 - 「차 손수재 처눌운」 저자 전경창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585년 10월 9일 - 「차 손수재 처눌운」 저자 전경창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859년 - 『계동집』 간행
배경 지역 파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지도보기
배경 지역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율시
작가 전경창

[정의]

조선 전기 대구 출신의 학자인 전경창손처눌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한시 3수.

[개설]

「차 손수재 처눌운(次孫秀才處訥韻)」의 저자 전경창(全慶昌)[1532~1585]의 본관은 경산(慶山)이며, 자는 계하(季賀)이고, 호는 계동(溪東)·만오(晩悟)이다. 정헌대부(正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인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전순(全珣)이고, 어머니는 김해송씨(金海宋氏) 송식(宋軾)의 딸이다. 대구부 수성현 파잠리(巴岑里)[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서 태어났다.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이다. 16세기 후반부터 대구 지역의 유학은 이황의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전경창이황의 성리학을 대구에 전파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숙량(李叔樑)[1519~1592], 정구(鄭逑)[1543~1620] 등과 교류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계동집(溪東集)』이 있다.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기도(幾道)이고, 호는 모당(慕堂)이다. 아버지는 손수(孫遂)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탄(李坦)의 딸이다. 정구의 문인이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 서사원(徐思遠)[1550~1615], 조호익(曺好益)[1545~1609] 등과 교유하였다.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모당집(慕堂集)』이 있다.

2018년 발행한 『국역 계동선생문집(國譯 溪東先生文集)』에서는 「차 손수재 처눌운」의 제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이하여 「손처눌의 시에 차운하다」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차 손수재 처눌운」의 제1수는 칠언율시(七言律詩), 제2수는 오언율시(五言律詩), 제3수는 칠언절구(七言絕句)이다.

[내용]

아래는 제1수의 전문이다.

문장체격귀평이(文章體格貴平夷)[문장의 체제와 격조는 평이함을 귀하게 여기니]

연후방론국사지(然後方論國士知)[그런 후에야 국사의 대우를 논할 수 있다네]

명의필선심맥락(命意必先尋脉絡)[뜻을 드러낼 때는 반드시 먼저 맥락을 찾아야 하고]

조사수주립근기(措辭須主立根基)[글을 지을 때는 모름지기 근기 세움을 주장하여야 하네]

학구묘오심여해(學求妙奧深如海)[학문의 오묘한 이치 구함은 바다와 같이 깊게 하고]

어도정미사팔사(語到精微細八絲)[언어의 정미함에 미쳐서는 가는 실과 같아야 하네]

노자광언심망행(老子狂言深望幸)[나의 쓸데없는 소리에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으니]

막장경세빙기사(莫將驚世騁奇詞)[장차 방자하고 기이한 말로 세상을 놀라게 하지 말라]

제2수에서는 공부의 방법과 처신의 중요성을 노래하였고, 제3수에서는 한가로운 전원생활의 정취를 노래하였다.

[특징]

「차 손수재 처눌운」의 제1수는 ‘지(支)’ 계열의 운목이 사용된 칠언율시이다. 제2수와 제3수는 각각 ‘경(庚)’ 계열의 운목과 ‘미(微)’ 계열의 운목이 사용되었는데, 이웃 계열에서 운자를 융통하여서 통용하는 통운(通韻)의 흔적이 보인다. 제2수 6행에서는 방운(旁韻)인 ‘청(靑)’ 계열의 운자를 융통하였고, 제3수 4행에서는 방운인 ‘지(支)’ 계열의 운자를 통운하였다.

[의의와 평가]

「차 손수재 처눌운」에 사용된 시어(詩語)를 바탕으로, 전경창이 추구하는 학문(學文)의 지향점과 삶의 자세를 알 수 있다. 형식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조선 전기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추구한 전경창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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