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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56
한자 硏經書院 次退溪記後 絶句韻 示諸生
영어공식명칭 In Yeon-kyung seowon, reply to the poem written by Teacher Lee-hwang and show several students
이칭/별칭 연경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절구시에 차운하고 제생들에게 보여 주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59년 - 김지남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621년연표보기 -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 창작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31년 - 김지남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54년 -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 저자 김지남의 『용계유고』 초간
편찬|간행 시기/일시 1697년 -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 저자 김지남의 『용계유고』 후쇄
배경 지역 연경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지도보기|동구 지묘동지도보기
성격 한시|칠언절구
작가 김지남

[정의]

대구의 연경서원을 노래한 퇴계 이황의 한시를 1621년 조선 후기 학자 김지남이 차운하여 지은 한시.

[개설]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硏經書院 次退溪記後 絶句韻 示諸生)」을 쓴 김지남(金止男)[1559~1631]은 본관이 광산(光山)이며, 호는 용계(龍溪)이고 자는 자정(子定)이다. 1591년 별시(別試) 대과(大科)에 합격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켰다. 내직으로 병조참의, 형조참의, 예조참의, 좌승지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 관서 지방의 어사, 사은부사, 남양부사, 상주목사, 경상감사, 순천부사, 청풍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의 배경 지역인 연경서원(硏經書院)은 대구 지역에 최초로 지어진 서원으로, 이황(李滉)[1501~1570]·정구(鄭逑)[1543~1620]·정경세(鄭經世)[1563~1633] 3인과 함께 별도로 향현사(鄕賢祠)를 세워 전경창(全慶昌)[1532~1585]과 이숙량(李淑樑)[1519~1592]을 제향하였던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연경서원의 터는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북구 연경동 사이에 있다. 이황연경서원 건립 공사가 완공되어 가고 있던 1565년(명종 19) 봄에 「서원십영(書院十詠)」 시를 지었는데, 그중 한 수가 연경서원을 노래한 「화암서원(畫巖書院)」이다. 화암서원연경서원의 별칭이다.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김지남이 1621년 경상감사로 부임하면서 연경서원을 방문하고 지은 작품이다.

[구성]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은 칠언절구이다. ‘연경서원에서 퇴계 선생의 절구시에 차운하고 제생들에게 보여 주다’라는 의미이다.

[내용]

학타이근훼차성(學惰而勤毁且成)[학문에 소홀함을 자네들은 힘써 제거하고 성취하여야 하니]

인개요순재연경(人皆堯舜在硏經)[사람들 모두 요순처럼 되려면 연경 두 글자에 달려 있네]

수관벽상선생기(須觀壁上先生記)[모름지기 벽 위에 걸린 퇴계 선생의 기문 올려다보면]

욕환군면개개성(欲喚群眠箇箇醒)[뭇 잠자는 사람들 불러다 면면히 일깨워 주고 싶어지네]

[특징]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이황(李滉)의 「화암서원(畵巖書院)」에 사용된 청(青) 계열의 운목을 사용하여 지은 칠언절구이다.

[의의와 평가]

「연경서원 차퇴계기후 절구운 시제생」은 평측의 나열이 정연하고 대구에 뛰어나다. 김지남연경서원에 드나드는 여러 유생과 선비들의 근면한 공부를 바라고 경상감사로서의 소임을 다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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