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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생예설분류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64
한자 五先生禮說分類跋
영어공식명칭 Write After “Classify Five Teacher's Confucian Proprieties"
이칭/별칭 「오선생예설분류의 발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43년 - 「오선생예설분류발」 저자 정구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20년 - 「오선생예설분류발」 저자 정구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80년 - 『한강집』 간행
배경 지역 사수동 -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 지도보기
성격 서발류|발문
작가 정구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일대에서 강학 활동을 하였던 문신이자 학자인 정구가 『오선생예설분류』 뒤에 붙여 쓴 발문.

[개설]

「오선생예설분류발(五先生禮說分類跋)」의 저자 정구(鄭逑)[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寒岡)이다. 아버지는 정사중(鄭思中)이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환(李煥)의 딸이다. 이황(李滉)[1501~1570]과 조식(曺植)[1501~1572]의 문인이다. 모든 방면의 학문에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많은 예서(禮書)를 편찬하였다. 정구는 말년에 칠곡 사수(泗水)[현 대구광역시 북구 사수동과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일대]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대구를 포함한 인근 지역의 유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구의 연경서원(硏經書院)·도동서원(道東書院) 등 많은 서원에 제향되었다.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는 정구가 정호(程顥)[1032~1085]·정이(程頤)[1033~1107]·사마광(司馬光)[1019~1086]·장재(張載)[1020~1077]·주희(朱熹)[1130~1200]의 예설(禮說)을 모아 편집하여 엮은 것이다. 「오선생예설분류발」은 『국역 한강집』에서 우리말로 제목을 풀이하여 「오선생예설분류의 발문」이라고 표기하였다.

[구성]

「오선생예설분류발」은 『오선생예설분류』 출간의 전후 과정을 서술한 것이다.

[내용]

「오선생예설분류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603년 호서(湖西) 목천(木川)에 있을 때, 벗 이복장(李福長)이 여러 선생들의 예설(禮說)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편집하길 권하여서 주변의 여러 선비들과 함께 힘을 모아 반달 만에 초고를 완성하였다. 이어 이를 판각하여 책으로 찍어 내려 하길래 극구 만류하여 상자 속에 넣어 두었다. 그런 뒤 영남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는데, 1611년에 성산(星山)[현 경상북도 성주군]의 사우들이 초고를 깨끗이 정리하자고 하여 이에 서문을 썼다. 그런데 1614년 봄에 노복이 불을 내서 서고가 완전히 불타 이 책 역시 소실되었다. 서사원(徐思遠)[1550~1615]과 송원기(宋遠器)[1548~1615]가 함께 힘써 재편집을 하고 여러 벗의 도움으로 등사하고 교정하여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를 완성하였다.”

[특징]

「오선생예설분류발」은 『오선생예설분류』 출간 과정이 매우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오선생예설분류발」의 저자 정구의 여러 출판물 중 『오선생예설분류』는 정구 예학(禮學)의 지향과 기준을 가늠하여 볼 수 있는 저작이다. 「오선생예설분류발」은 『오선생예설분류』의 제작 과정과 정구의 고심,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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