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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판서서공 성 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6697
한자 祭判書徐公 渻 文
영어공식명칭 A memorial service poem for Seo-sung
이칭/별칭 서성을 위한 제문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1180-19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곽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588년 - 신익성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644년 - 신익성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654년 - 「제판서서공 성 문」 저자 신익성의 『낙전당집』 간행
배경 지역 구암서원 -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공원로17길 20[산격동 산79-1]지도보기
성격 애제류|제문
작가 신익성

[정의]

대구 지역 구암서원에 제향된 조선 후기 문신 서성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신익성이 지은 제문.

[개설]

「제판서서공 성 문(祭判書徐公 渻 文)」을 쓴 신익성(申翊聖)[1588~1644]은 본관이 평산(平山)이며, 자는 군석(君奭)이고, 호는 낙전당(樂全堂)이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어머니는 이제신(李濟臣)의 딸이다. 신익성은 선조의 부마로, 정숙옹주(貞淑翁主)와 혼인하여 ‘동양위(東陽尉)’에 봉하여졌다.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종하였고 청군과 계속 싸울 것을 주장한 척화오신 중 한 명이다. 저서로 1654년 간행된 『낙전당집』이 있다.

서성(徐渻)[1558~1631]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현기(玄紀), 호는 약봉(藥峯)이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아버지는 서해(徐嶰)이고, 어머니는 이고(李股)의 딸이다.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이다.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구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구성]

「제판서서공 성 문」은 1구 4언으로 총 118구의 제문이다.

[내용]

「제판서서공 성 문」의 서두에서는 선조 때의 공적과 평소 성품을 칭송하였다. 관직에서의 강직하고 충성스런 모습을 찬양하고, 계축옥사를 함께 겪었던 신익성의 아버지 신흠과 인조의 장인이 되는 한준겸(韓浚謙)과의 인연을 드러내었다. 본문에서는 인조 때 왕을 보필하였던 강건한 모습을 그리며 풍채를 신선에 비유하며 서성을 칭송하였다. 결문에서는 장문으로 서성의 죽음을 슬퍼하며 후대에 끼친 서성의 공덕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서성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특징]

「제판서서공 성 문」은 4구 단위로 동일 계열의 운목으로 짝수행의 운자를 맞추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판서서공 성 문」은 제문이라고는 하나 4언체 고시의 성격이 강하다. 신익성은 운자를 4구 단위로 전환시키며 운율을 두었고 뜻[意] 전달에 치중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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