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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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1929년 대구광역시에서 대구사범학교 출신 교사와 학생이 비밀결사로 조직한 사회주의 단체.
[개설]
주먹단은 김동환(金東煥)·권태림(權泰林)·김용갑(金龍甲)·서영달(徐迎達) 등 4명이 1929년 2월 24일에 조직한 사회주의운동 단체이다. 4명은 1930년 체포 당시 모두 22세였다.
[설립 목적]
주먹단은 무산대중을 자각시켜 사회주의사회를 세우고자 설립되었다.
[역사적 배경]
권태림·김용갑·서영달·김동환은 모두 대구사범학교 친구 사이였다. 그중 김동환은 1928년 7월 제3학년 1학기 말에 퇴학당하였다. 4명은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부터 프롤레타리아 연구를 함께 하였다. 김동환은 대구사범학교 퇴학 후 대구부립도서관에 출입하면서 『문예전선』, 『개조』, 『중앙공론』 등에서 러시아혁명 또는 레닌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프롤레타리아 연구를 하였다. 권태림은 제3차 공산당 사건 관계자인 권태동의 영향을 받아 사회과학 서적을 탐구하였다.
권태림·김용갑·서영달·김동환은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면 식민지 체제에서 빈부 격차가 더욱 커지고,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은 서로 적대시하기 때문에 계급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파악하였다. 따라서 “사유재산제도를 파괴하고 ‘공산 제도’라는 신(新)사회를 실현하려면 무산대중을 자각시켜야 한다”고 파악하였다. “계급의식을 함양하고 투쟁적 지식과 수단을 교양하면 무산대중의 자각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으며, 조직을 만들어 이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경과]
1929년 2월 16일 김동환·권태림·김용갑 3명은 대구부 덕산정 오포산[속칭 월견산]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렇지만 조직 명칭은 정하지 않았다. 또한, 교사 재직 의무연한 동안 활동 자금을 저축하고, 1933년 의무연한이 끝나면 사직 후 잡지를 발간하고 무산자의 지도 교양에 힘쓰기로 하였다. 1929년 2월 24일 김동환·권태림·김용갑·서영달 4명은 서영달의 하숙집에서 대구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이순이·배남이를 비밀결사에 가입시켰다. 이날 조선 내에서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 제도를 실현할 목적으로 ‘권대[주먹단]’라는 이름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때 주먹단을 통일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강령, 조직, 운영 방안 등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주먹단의 강령은 총 14개 항으로 만들어졌다. 김동환은 1929년 2월 25일 프롤레타리아 연구를 위하여 경성에 갔다. 1929년 2월 26일 강령서를 필사하여 한 부씩 나누어 가졌다. 김동환·권태림·서영달 등은 1929년 3월 21일 대구부 남산정 이순이의 하숙집에서 조선프로예술동맹의 지부를 설치하는 것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결과]
김동환·권태림·김용갑·서영달 4명은 1930년 3월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과에 의하여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권태림은 대구수창공립보통학교[현 대구수창초등학교] 훈도, 김용갑은 경주여자공립보통학교[경주공립보통학교라는 설도 있음] 훈도, 서영달은 내성공립보통학교[내성보통학교라는 설도 있음] 훈도로 근무하고 있었다. 1930년 8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으로 김동환은 징역 2년, 권태림은 징역 1년 6월, 김용갑·서영달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심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30년 11월 8일 대구복심법원은 기각 처분을 내렸다.
권태림은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의의와 평가]
주먹단은 1930년대 현직 교원이 조직한 최초의 비밀결사 사회주의 단체이며, “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비밀결사”라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