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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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Martha Scott Bruen |
이칭/별칭 | 부마태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정은 |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선교사.
마사 스콧 브루언(Martha Scott Bruen)[한국명 부마태]은 1901년 선교사인 헨리 먼로 브루언과 결혼한 직후 남편을 따라 대구로 왔고, 신명여자소학교와 신명여자중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마사 스콧 브루언은 1902년 5월 10일 이디스 파커(Edith Parker)와 함께 여자아이들을 모아 남문안예배당[현 대구제일교회] 구내 초가에서 대구·경상북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신명여자소학교[현 신명여자중학교·신명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1907년 신명여자소학교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상급학교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1907년 10월 15일 대한제국 중학교령에 의거하여 신명여자중학교를 남산정 동산[현 중구 동산동]에 설립하여 개교하고 신명여자중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하였다. 이로써 마사 스콧 브루언은 근대 대구 여성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신명여자중학교는 전교생이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도 여성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마사 스콧 브루언은 1916년 남산교회 부인주일학교와 농촌교회 여성 전도회를 조직하고 부인 사경회를 이끌었다. 마사 스콧 브루언은 1930년 10월 20일 사망하였다.
마사 스콧 브루언의 묘소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구내에 있는 기독교 순교자 묘지인 은혜정원[Garden of Mercy]에 있다.
신명고등학교에서는 2001년 10월에 설립자인 마사 스콧 브루언을 기념하여 ‘M. S. 브루언 동산’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마사 스콧 브루언의 쌍둥이 두 딸이 어머니 옆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겨, 2007년 10월 21일 유족들이 ‘신명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유품을 가지고 왔다. 묘비는 가족들과 신명학교 관계자들이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