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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광학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49
한자 大邱廣學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6년 8월연표보기 - 대구광학회 설립
최초 설립지 우현서루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 지도보기
성격 계몽운동 단체
설립자 최대림|이일우|윤영섭|김선구|윤필오|이종면|이쾌영|김봉업

[정의]

1906년 8월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

[개설]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는 1906년 8월 대구에서 최대림(崔大林), 이일우(李一雨)[1870~1936], 윤영섭(尹瑛燮), 김선구(金善久), 윤필오(尹弼五), 이종면(李宗勉), 이쾌영(李快榮), 김봉업(金鳳業) 등 지역 유지인 거대 상인, 지주, 전직 관료, 개명 유교 지식인 등이 설립한 계몽운동 단체이다.

[설립 목적]

대구광학회는 “나라가 위기에 닥쳐 있고 망하게 된 것은 민지(民智) 개발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독립의 권한을 부식하려면 교육으로 국민의 정신을 양성하여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교육 진흥과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광학회는 학교와 유치원 같은 교육기관의 광범위한 설립과, 박물관·도서관·박람회와 같은 각종 지식 개발에 도움이 되는 기관이나 행사를 신설하고자 하였다. 또 토론회·연설회와 같은 근대 지식 함양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고, 도서종람회·신문종람소와 같은 정보 공유 체계 등을 세워 근대 학술을 강구하고 지식을 연마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대구광학회의 주요 사업은 국민의 배움 또는 학문을 넓히고자 하는 ‘욕민광학(欲民廣學)’에 중점을 두었다.

대구광학회는 발기인 이일우가 운영하던 우현서루(友弦書樓)를 사무소로 활용하였다. 우현서루에는 시무학당(時務學堂)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동서양의 신구 서적과 각종 신문과 잡지를 광범위하게 비치하여 두었다. 대구광학회는 민의소(民議所) 형태의 대구시의소(大邱市議所)를 별도로 운영하였다. 대구시의소대구광문사(大邱廣文社)가 설치한 인민대의소(人民代議所)와 마찬가지로 대의 기구적 형태의 민의(民議) 집결, 민지 개발, 민기 진작을 통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방안으로 운영되었다. 대구시의소에는 교육부를 설치하여 교육부가 주관한 환등회(幻燈會)를 개설하여 계몽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학회는 대구에서 설립된 교육 진흥 운동와 산업 진흥 운동을 목적으로 한 계몽운동 단체이다. 교육 부문에 중정을 두고 활동을 전개하였고, 계몽운동의 지역 기반을 확보하고, 계몽운동이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대구광학회는 1907년 1월 대구광문사 문회(文會)[후에 대동광문회]에서 제기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참여하여 운동이 전국으로 파급되는 데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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