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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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公設住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공설 주택.
[설립 목적]
공설 주택은 일제강점기에 대구부가 중산층 이하 영세민의 주택난을 돕기 위하여 벌인 주택사업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부는 1921년 9월에 문화동, 동인동, 달성동 3개 동에 와즙평호가건(瓦葺平戶家建) 50호의 주택 건설을 위한 기공식을 열었다. 공설 주택 공사비는 도비 보조금 1만 원, 기채(起債) 4만 원 등 총 5만 원이었다. 1922년 3월 31일에 준공하였다. 1926년에 달성동의 공설 주택은 폐지되었다. 1938년에 대구의 공설 주택은 문화동 주택의 갑호 주택 2동 4호, 을호 주택 3동 12호, 동인동 주택의 을호 주택 3동 12호 등 모두 8동 28호였다. 그런데 공설 주택의 입주권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일본인이었고, 조선인은 한 명도 없었다.
일제는 대구를 비롯한 대도시의 주택난이 심각하여 공설 주택을 지어 주택난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려 하였으나 실제로 사업이 추진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구부는 1942년도에 국고보조비와 대구부 예산 등을 확보하여 공설 주택 100호 건설 계획과 독신자 아파트 건설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사업 추진 결과는 확인하기가 여의치 않다.
[의의와 평가]
대구부가 영세민의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공설 주택을 건설하였으나 실제로 혜택을 본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대구부 공설 주택의 혜택도 심각한 정도의 민족 차별이 자행되는 가운데 추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