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342
한자 白年雪
영어공식명칭 Baek Nyeonseol
이칭/별칭 이창민(李昌民),이갑룡(李甲龍),이갑용(李甲勇)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김성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4년 1월 19일연표보기 - 백년설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백년설 일본에서 가수 데뷔
활동 시기/일시 1945년 9월 1일 - 백년설 「깃발 흔들던 날」 공연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백년설 대한가수협회 창설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백년설 한국연예협회 위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79년 - 백년설 미국 이민
몰년 시기/일시 1980년 12월 6일연표보기 - 백년설 사망
출생지 경상북도 성주 - 경상북도 성주군
활동지 봉화가극단 - 대구광역시
성격 가수
성별 남성
대표 경력 한국연예협회 위원장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가수.

[개설]

백년설(白年雪)[1914~1980]은 1914년 1월 19일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이 몸이 죽고 죽어」 등의 친일 가요를 부른 이력이 있다.

[활동 사항]

백년설은 1938년 일본에서 가수로 데뷔하였다. 이후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을 불러 히트시켰다. 백년설은 대구에서 봉화가극단을 조직하였다. 봉화가극단은 1945년 9월 1일 대구 키네마구락부[현 CGV한일]에서 「깃발 흔들던 날」이라는 연극을 공연하였다. 「깃발 흔들던 날」은 해방 후 공연된 대한민국 최초의 연극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년설의 봉화가극단은 이후 대구극장에서 「상해야 잘 있거라」를 공연하였으나 그 후로는 별다른 활동 없이 해산하였다.

백년설은 1958년 대한가수협회를 창설한 뒤 회장직을 역임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백년설은 1979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1980년 12월 6일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백년설의 대표곡은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이다. 백년설이 조직한 봉화가극단의 연극으로는 「깃발 흔들던 날」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