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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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禹祚 |
영어공식명칭 | Kim Ujo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현정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8월 14일 - 김우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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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김우조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김우조 대구화우회 창립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김우조 대구화우회 제1회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2010년 12월 31일 - 김우조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달성군 옥포면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
학교|수학지 | 화원공립보통학교 - 대구광역시 |
학교|수학지 | 계성중학교 - 대구광역시 |
성격 | 미술가 |
성별 | 남성 |
[정의]
대구 출신의 목판 화가.
[개설]
김우조(金禹祚)[1923~2010]는 1923년 8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진옥(金振玉), 아버지 김창수 모두 한학에 조예가 깊었다.
[활동 사항]
김우조는 화원공립보통학교[현 대구화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성중학교로 진학하였다. 당시 계성중학교에는 도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미술 교사로 부임한 서진달이 있었다. 김우조와 서양화가 변종하가 서진달에게 수업을 받게 된다. 김우조는 서진달의 권유로 미술반에 가입하고 지도를 받아 1941년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김우조는 계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1943년 청도군 송서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1946년부터 중등학교 미술 교사가 되어 1988년 정년 퇴임 때까지 교직 생활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
김우조는 6·25전쟁 중인 1951년 결성된 대구화우회의 창립 회원이었다. 김우조의 공식적인 화단 활동은 지역 최초의 그룹전인 1952년 대구화우회 제1회전이다. 후에 황토회와 나상회 등의 동인 그룹에도 참여하였다. 향토회는 1959년 백락종을 중심으로 백태호, 나재수, 민영식 등 4인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김우조는 창립 회원 중 나재수가 타계하자 그 빈자리에 가입하여 1978년 제4회부터 1990년대까지 활동하였다. 김우조가 1978년 이후에 참여한 나상회는 누드모델을 연구하며 인체를 그리는 동인이었다.
1951년 대구의 화가들은 서동진을 중심으로 대구화우회를 조직하고 몇 차례 전람회를 열었다. 1953년 제3회전을 미국문화관에서 개최하였는데 신구 세대가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였다. 김우조는 서동진, 주경, 이복, 박인채, 변종하 등과 함께 전람회에 참여하였다.
김우조는 정년퇴직 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서 ‘의정미술원’을 운영하며 판화 과목을 맡아 대학 및 기관에 출강하였다. 타계하기 전 20여 년 동안은 작업에만 전념하여 다양한 주제로 목판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김우조는 수많은 미발표작을 남겨두고 2010년 12월 31일 타계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우조는 활동 초기에는 유화와 수채화 위주의 작품 활동을 하였다. 이 외에도 사진, 조각, 공예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였으나 일제 말기, 해방 공간, 6·25전쟁 등 어려운 시기에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서 판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전통 목판 인쇄술의 역사성과 우리 고유의 미의식에 감동받아 1950년 이후부터는 독학으로 판화 작품 제작에 심취하였고, 목판화 작업에 힘썼다.
김우조는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습작과 함께 완성도 높은 판화 작품을 남겼다. 대표 작품은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작 「책을 읽는 소년」[1941], 대구화우회 1회 출품작 「꽃과 女人」[1952], 대구화우회 3회 출품작 「古壺」[1953], 대구 미국문화원 5주년 기념전 출품작 「선자 상」[1953], 「1950년의 회상」[1966], 「50년대 회상」[1968], 「겨울 풍경」[1969], 「하오(下午)」[1969], 「밀림」[1974], 「낙동강」[1978]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