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346 |
---|---|
한자 | 卞鐘夏 |
영어공식명칭 | Byeon Jongha |
이칭/별칭 | 석은(石隱)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신현정 |
[정의]
대구 출신의 서양화가.
[개설]
변종하(卞鐘夏)[1926~2000]는 1926년 7월 28일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호는 석은(石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아버지는 서예가 석정 변해옥(卞海玉)[1890~1962]이다.
[활동 사항]
변종하는 서양화가 김우조와 함께 계성중학교에서 서진달에게 서양화의 기초를 배웠다. 1942년 서진달의 추천으로 만주 신경시립미술원 서양화과에 편입하여 1945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1953년 대구 미국공보원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초대 작가,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6년 제4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포푸라」로 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변종하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1955년부터 1957년까지 연속 특선을 하며 추천작가가 되어 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1951년 대구의 화가들은 서동진을 중심으로 대구화우회를 조직하고 몇 차례 전람회를 열었다. 1953년 제3회전을 미국문화관에서 개최하였는데 신구세대가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였다. 변종하는 서동진, 주경, 이복, 박인채, 김우조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변종하는 1960년 프랑스로 유학을 하여 파리 알리앙스 프랑세즈,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공부하였고, 1962년에는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62년 프랑스 미술 비평가이자 시인인 르네 드르앙(Rene Drouin)에게 발탁되어 루시앙 뒤롱 화랑과 계약을 맺고, 1967년까지 작품을 발표하였다. 런던 쿠퍼 화랑, 뮌헨 마가렛 라우더 화랑, 파리시립미술관 등에도 초대되어 작품을 출품하였다. 1965년 귀국한 후 한국 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내용을 담은 해학적인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1992년에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변종하는 유화·부조·도예 작품을 통하여 한국적 이미지와 시적인 정서를 결합하고자 하였다. 요철 위에 마포를 씌우고 색을 칠하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였다. 변종하는 평면의 회화적 이미지의 한계에서 벗어나 각인된 상태의 입체적 효과인 요철회화(凹凸繪畵)를 만들어 냈다. 유화 외에도 도화(陶畵)나 드로잉, 콜라주, 판화와 같은 다양한 장르로 확대 시도하였다. 변종하는 198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 2000년 7월 29일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변종하의 작품에는 프랑스에 유학하면서 작업한 「우화」, 귀국 후 풍자와 해학의 의미를 담은 「돈키호테」 시리즈가 있다. 「우화」와 「돈키호테」 시리즈는 일그러진 인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였다. 1975년 현대화랑에서 「어떤 탄생」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민화·야생초 등과 새를 소재로 한 작품을 시리즈로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 투병 생활 중에 남긴 「자화상」 시리즈, 사물의 원초성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감자꽃과 태초의 새」가 있다.
[상훈과 추모]
변종하는 1978~1979년에 서울시 문화상, 19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1996년 12월 23일 변종하의 미술을 기념하고 미술 문화 발전에 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석은미술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생전에 작업하던 성북동 주택을 개조하여 현재 변종하기념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