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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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共勵組合[東區] |
영어공식명칭 | Gongryeo Un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손경희 |
[정의]
193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세워진 농업 조합.
[설립 목적]
공려조합(共勵組合)은 일제가 전쟁 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농촌이 더욱 피폐해지자 「농가경제갱생계획」을 목표로 설립했다.
[변천]
1930년대 농촌통제정책은 농촌진흥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농촌진흥운동의 주요한 실행 방안으로 개별 농가경제 안정을 목표로 한 「농가경제갱생계획」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총독부는 1935년 「갱생지도부락확충계획」을 발표하여 부락 단위의 집단 지도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갱생지도부락확충계획」은 1940년 이후 농촌통제책 및 증산정책의 원칙이 되었다. 1940년대 국민총력운동 실시와 함께 전쟁 수행을 위한 인적, 물적자원의 총동원을 위해 농촌진흥운동을 농산촌생산보국운동으로 전환하고 「부락생산확충계획」을 실시했다. 이후 전쟁 동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농업생산력을 증가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조선농촌재편성계획」과 「조선농업계획요강」이 만들어졌다. 농촌진흥운동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의 도발과 함께 추진한 국민정신총동원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더욱 강화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농가를 대상으로 한 공려조합의 결성이었다. 일제의 전쟁정책으로 조선의 농촌이 더욱 피폐해지자 일제가 농가갱생계획을 목표로 공려조합의 결성을 추진하였다. 현 대구광역시 동구에는 해안면과 공산면에 공려수리조합이 설치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공려조합은 부족 식량의 충실, 현금 수지의 균형, 부채의 정리 상환을 목표로 하여 농민생활의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이것은 명분에 그쳤고, 공려조합의 실제 목표는 ‘충실한 황국신민의 양성’에 있었다. 만주 침략 이후 실시된 농촌진흥운동이 일제의 전쟁정책 강화와 함께 운동의 지도정신을 생업보국에 두고 이것의 정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목적으로 공려조합을 조직했다.
[현황]
공려조합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공려조합의 실제 목표가 농가갱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정책의 선전과 동원 그리고 협력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