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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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東內洞 勝芳齋 |
영어공식명칭 | Seungbangjae House of Donnae-dong, Daeg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6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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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대구 동내동 승방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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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재사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장수황씨 문중 |
관리자 | 장수황씨 문중 |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 있는 1639년 건립된 재사.
장수황씨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지역의 세거성씨 중 하나이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 있는 장수황씨 문중의 재사로, 면와(俛窩) 황경림(黃慶霖)이 건립했다. 황경림은 임진왜란 때 의병 창의하여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노년에 고향인 동내동으로 돌아와 승방재를 짓고 은거했다. 동내동에는 황경림을 기리는 추모시설이 여러 곳 있었다. 그 대표적 유적이 바로 승방재·영사재·동호서당 등이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초례산 정상 남쪽 해발 약 270m에 있다. 신서혁신지구 가장 북동쪽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따라 북쪽 초례산 정상을 향해 1.7㎞쯤 가다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좌측에 있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1639년(인조 17)에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에 처음 세워진 위치에서 현재까지 위치하고 있다. 1948년에는 동내동 마을 초입에 영사재(永思齋)를 별도로 건립하여 황경림을 추모하는 재실로 삼았다.나중에 승방재 편액도 영사재로 옮겼다. 그러나 2010년대 초 동내동이 신서혁신지구에 편입될 때 영사재는 사라지고,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지금도 남아 있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정침·사당·대문체 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돌담으로 둘러싸인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좌측에서부터 1칸 방, 2칸 대청, 2칸 방이며 전면으로 쪽마루를 설치했다. 대문채는 1칸 규모이다. 사당은 3칸 규모로 돌담장 밖에 별도로 있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장수황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초례산의 높은 지대에 자리한 탓에 관리상 어려움이 많았다.
대구 동내동 승방재는 오랜 세월 동내동에서 세거해온 장수황씨 문중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귀중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