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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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宅鎭 |
영어공식명칭 | Choe Taekjin |
이칭/별칭 | 우첨(禹瞻),반운재(伴雲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장인진 |
출생 시기/일시 | 1788년 8월 21일 - 최택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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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60년 8월 10일 - 최택진 사망 |
출생지 | 최택진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
묘소|단소 | 최택진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
성격 | 선비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선비.
[개설]
최택진(崔宅鎭)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자는 우첨(禹瞻), 호는 반운재(伴雲齋)이다. 성품은 온후하고 깨끗하였다고 전해진다.
[가계]
최택진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감(縣監)을 지낸 최수학(崔壽學)이고, 할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최윤석(崔崙錫)이며, 아버지는 최흥호(崔興祜)이다. 어머니는 이홍록(李弘祿)의 딸인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부인은 정윤동(鄭尹東)의 딸인 동래정씨(東萊鄭氏)인데 슬하에 두 아들 최길(崔洁), 최정(崔湞)과 정유형(鄭裕亨), 이강호(李綱浩), 송지인(宋志仁)에게 출가한 세 딸을 두었다.
[활동 사항]
최택진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있었고 손수 농사지어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일가나 인척 및 친구들에게 은혜를 많이 베풀었다. 그 높은 의리와 선행에 탄복하여 사람들이 “아홉 번 죽어도 변하지 않을 뜻과 어린아이를 맡길 만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다.[구사미변지지 육척가탁지신운(九死靡變之志 六尺可託之信云)]”라고 칭찬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택진은 어려서 칠실(漆室) 최화진(崔華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 최화진이 엄히 가르치고 지도하여 조그만 실수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는데, 최택진은 항상 말을 꾸미지 않고 바른말을 하여 꾸중을 받아도 한스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말씨나 일 처리를 반드시 스승 최화진의 명령에 따랐다. 최택진은 집안 살림을 맡은 이후로 능히 글공부에 전심전력할 수 없었으나, 평일에 읽은 것을 외우고 만년에도 마음을 두어서 때때로 글을 짓기도 하였는데, 내용이 간결하여 볼 만하였다고 한다.
[묘소]
최택진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해북촌(解北村) 광리(廣里)[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의 당남산(唐南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