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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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興之 |
영어공식명칭 | Choe Heungji |
이칭/별칭 | 흥좌(興佐),중빈(仲賓),서고(西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진 |
출생 시기/일시 | 1732년 10월 17일 - 최흥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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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86년 7월 16일 - 최흥지 사망 |
출생지 | 최흥지 출생지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묘소|단소 | 최흥지 묘소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출신의 문인.
[가계]
최흥지(崔興之)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초명은 흥좌(興佐), 자는 중빈(仲賓), 호는 서고(西皐)이다. 최흥지는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병조판서에 오른 뒤 광정(匡靖)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최단(崔鄲)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경류(崔慶流)이고, 할아버지는 최수익(崔壽益)이며, 아버지는 최봉석(崔鳳錫)이다. 어머니는 박명채(朴明采)의 딸인 순천박씨(順天朴氏)이다. 부인은 신하구(申夏龜)의 딸인 아주신씨(鵝洲申氏)인데 슬하에 아들 최기진(崔箕鎭)과 신광계(申光啓)에게 출가한 딸이 있다.
[활동 사항]
최흥지는 겨우 첫돌을 넘겨서 아버지를 잃고 계부(季父)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8세에 『십구사략』을 배우는데 십여 장을 읽어가면서 글 뜻을 스스로 이해하였으며 13~14세 때 사서(四書)의 글을 두루 읽었다. 16세에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문들과 공부할 때는 책상에 바로 앉아서 사서(四書)와 『심경』, 『근사록』, 『주자서절요』 등을 숙독해서 깊은 뜻을 동문들과 확인한 후 스승 최흥원에게 물어보고 바로잡았다. 학문을 하는 데 착실하였고 학식과 이해가 정밀하였다. 일상생활은 윤리도덕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논변은 인의(仁義)를 위주로 하였으며, 이치를 분석하는 데 상세하였고, 일 처리는 치밀하였다.
[묘소]
최흥지의 묘소는 대구광역시 해서촌 가사동(佳沙洞)[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