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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첨백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1411
한자 題瞻栢堂
영어공식명칭 Poem from Cheombaekda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30년 - 「제첨백당」우성규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05년 - 「제첨백당」우성규 사망
편찬|간행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제첨백당」간행
배경 지역 「제첨백당」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116길 192-7[평광동 979]지도보기
성격 한시|율시|칠언 율시
작가 우성규

[정의]

개항기 문신이자 학자인 우성규가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에 있는 첨백당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개설]

우성규(禹成圭)[1830~1905]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성석(聖錫), 호는 경재(景齋) 또는 경도(景陶)이다. 우성규는 달성(達城)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지금 서울특별시]에 올라가 명류(名流)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고종 때 북부령·사직령, 임천·단양의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돈령부도정에 임명되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 경전을 공부하는 한편, 후학의 교육에 힘써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시의 소재가 된 첨백당은 우효중(禹孝重)의 효행과 우명식(禹命植)의 충성심을 기리며, 광리에 거주하는 단양우씨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첨백당’이라는 이름은 우명식 선생의 묘소가 있는 “백밭골을 우러러보는 집”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첨백당은 1896년(고종 33)에 지었고, 1924년 새롭게 고친 적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집 가운데는 대청마루가 있는데, 양쪽 툇마루보다 높게 놓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툇마루에는 난간을 아담하게 둘러 놓았다.

[구성]

「제첨백당(題瞻栢堂)」은 8행으로 이루어진 7언 율시이다. 우성규의 문집인 『경재집(景齋集)』에 수록되어 있다.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에서 첨백당과 그 주변의 풍경을 읊으며 소회를 밝히고, 경련(頸聯)과 미련(尾聯)에서는 첨백당에서의 미풍양속을 말하며 자손들에게 권면하도록 하고 있다.

[내용]

「제첨백당」 전문이다.

첨백당고공고성(瞻栢堂高功告成)[첨백당의 높은 공 이루어지고]/풍헌소쇄월창명(風軒蕭灑月窓明)[첨백헌에 깨끗한 바람 불어오니 달 빛 창 맑구나.]/

송소회로선령경(松踈檜老仙靈境)[소나무 성긴 숲과 늙은 전나무는 신선의 거처이고]/로출상처효자성(露怵霜悽孝子誠)[이슬과 서리에 두려운 마음 드는 것은 효자의 정성이네.] /

일벽강유다사회(日闢講帷多士會)[날마다 강론(講論)의 자리 열리니 많은 선비들이 모이고]/시행음례중빈영(時行飮禮衆賓迎)[때마다 향음례를 열어 뭇 손님들을 영접하네.] /

문란종차의창대(門欄從此宜昌大)[집안의 이러한 아름다운 가풍을 따라 마땅히 창대하리니]/면사아손계구성(勉使兒孫繼舊聲)[자손에게 옛 명성 잇게 할지어다.]

[특징]

「제첨백당」은 1행·2행·4행·6행·8행에 경(庚) 계열의 운자가 사용되었다. ‘노술상서(露怵霜悽)’는 『예기(禮記)』 「제의편(祭義篇)」에 나오는 구절인 “서리 이슬이 이미 내리면 군자가 밟으니 반드시 처량한 마음을 가지니 그것은 추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봄비가 이미 내리면 군자는 밟으니 반드시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니, 장차 (부모를) 보는 것과 같다.[상로기강(霜露旣降) 군자리지(君子履之) 필유처창지심(必有悽愴之心) 비기한지위야(非其寒之謂也) 춘우로기유(春雨露旣濡) 군자리지(君子履之) 필유출척지심(必有怵惕之心) 여장견지(如將見之)]”를 차용한 듯하다. 이처럼 시 표현에 있어서 『시경(詩經)』과 『예기』의 흔적이 역력하다.

[의의와 평가]

「제첨백당」은 근대 개항기에 재실의 풍속을 확인할 수 있는 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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