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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농민조합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453
한자 達城郡 農民組合
영어공식명칭 Dalsung Farmers association
이칭/별칭 현풍 농민 조합,달성 농민 조합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1월연표보기 - 달성군 농민조합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11월 - 달성군 농민조합 경북도 연맹 결성에 참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5년 12월 - 달성군 농민조합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에 참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3월 - 달성군 농민조합 현풍 지부 결성
성격 농민 운동 단체

[정의]

광복 후 달성군에 설립되었던 좌익 농민 운동 단체.

[개설]

달성군 농민조합은 1945년 12월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에 앞서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달성군 농민조합이 결정되기 전인 1945년 10월에는 대구 지역과 함께 대구 달성 연합 농민 조합 협의회가 결성되어 있었다. 달성군 농민 조합은 농촌 지역인 달성군의 농민 문제, 곧 소작료와 토지 문제 해결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농민을 참가시키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달성군 농민조합의 주요 인물인 이 가운데 조은석(趙銀石)곽수범(郭洙範)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대구 지역 학생 운동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설립 목적]

달성군 농민조합은 광복 후 농민의 조직적 훈련, 소작료와 토지 문제 해결 그리고 국가 건설 운동에 농민을 적극 참가시키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달성군 농민조합이 결성되기 전인 1945년 10월에는 대구 지역과 함께 대구 달성 연합 농민 조합 협의회가 결성되어 있었다. 주요 부서와 간부를 보면 고문에 서영로, 채충식, 김선기, 위원장에 상무상, 부위원장에 곽수범, 서기부에 김환임, 선전부에 조은석, 쟁의부에 채병주, 조직부에 이인로, 사업부에 서영대 등이었다. 1945년 11월 달성군 농민조합이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달성군 농민조합은 1945년 11월 농민 조합 경북도 연맹의 결성에 참여하고, 조은석곽수범이 상임 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했다. 1945년 12월에 열린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 대회에 조은석, 채병주, 곽수범 등이 달성군 대표로 참석하였다. 1946년 3월 이전 달성군 현풍면[현 현풍읍]에는 김수엽을 대표로 100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달성군 농민조합 현풍 지부가 결성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광복 직후 농민들의 현안이었던 소작료 3·7제 관철, 소작권 이동 금지 등의 농민 권익 옹호와 토지 문제의 해결 그리고 문맹 퇴치 등을 주요 목표로 활동하였다. 또 정치 활동에 농민을 적극 참가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면서, 농민 조합 경북도 연맹,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등 농민 운동의 전국적 조직 결성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달성군 농민조합 현풍 지부는 ‘민주 정당을 건설하자,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을 지지하자, 농민을 돕자’ 등의 강령을 채택하여, 농민의 경제적 이익 실현과 농민 운동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등을 주요 사업으로 설정하고 활동을 전개하였다.

[현황]

달성군 농민조합의 조합원은 대구를 포함하여 1만 80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다.

[의의와 평가]

광복 후 결성된 달성군 농민조합은 농민과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활동하면서도, 모스크바 삼상 회의 결정 지지와 미소 공동 위원회 성공적 개최 등을 통해 건국을 위한 정치 활동도 적극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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