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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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成氏 旌閭閣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619-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동락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건립된 조선 후기 열부 창녕성씨의 정려각.
[건립 경위]
「열부 하산 성씨 정려기(烈婦夏山成氏旌閭記)」[하산은 창녕의 옛 이름]에 의하면 "창녕성씨(昌寧成氏)는 1791년(정조 15) 12월 20일 나이 18세에 폐백을 받고 시집오기 전 남편이 1792년(정조 16) 4월 14일에 죽자 식음을 전폐하다 11일 만에 죽고 말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1794년(정조 18)에 정려를 내려 그 뜻을 기렸다"고 한다. 창녕성씨 정려각(昌寧成氏旌閭閣)은 1935년에 건립되었으며, 「열부 하산 성씨 정려기」의 내용을 새긴 비는 2005년에 건비되었다.
창녕성씨 정려각에 대한 기존 설명에서 1494년(성종 25)에 정려를 내렸다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보이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성종 25년 3월 27일에 "단성현(丹城縣)의 선군(船軍) 성계문(成季文)의 딸 성 소사(成召史)는 그 남편이 호랑이에게 해를 당하자 애훼(哀毁)하기를 예법대로 하고 3년상을 지켰는데, 부모(父母)가 그의 뜻을 빼앗으려고 하자 소사가 듣고는 밤을 틈타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습니다. …… 청컨대 『대전(大典)』에 의하여 성계문의 딸에게는 그 문려(門閭)에 정표(旌表)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성 소사와 창녕성씨는 시대와 정려의 내용이 다르므로 1494년이라는 연대는 잘못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창녕성씨 정려각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619-1번지에 위치한다.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선사 마을에서 하빈면사무소 방향으로 300m쯤 가다 보면 도로 우측 편에 정려각이 나타난다.
[형태]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주위는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창녕성씨 정려각 앞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정려각 내부에는 '열부 학생 박지운 처 창녕성씨지려(烈婦學生朴之運妻昌寧成氏之閭)', '열부 하산 성씨 정려기(烈婦夏山成氏旌閭記)' 등 2개의 현판과 오석으로 만든 1기의 비석이 유존한다. 비는 비좌 위에 원수형(圓首形)의 비신을 얹은 형태로 전면에 '열부 창녕성씨 정려비(烈婦昌寧成氏旌閭碑)'가 새겨져 있다. 규모는 비석 높이 135㎝, 폭 47㎝, 두께 16㎝이다. 현판 '열부 학생 박지운 처 창녕 성씨지려'의 규모는 길이 135㎝, 폭 30㎝이고, 현판 '열부 하산 성씨 정려기'의 규모는 길이 129㎝, 폭 40㎝이다.
정려문은 전면에 "烈婦學生朴之運妻昌寧成氏之閭(열부학생박지운처창녕성씨지려)", 전면 좌측에 "正宗甲寅(정종갑인) 特命旌閭(특명정려) 乾隆(건륭) 乙亥三月二十八日建閣(을해삼월이십팔일건각)"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