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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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郭元振 |
영어공식명칭 | Gwak Won Jin |
이칭/별칭 | 석천(石川),문헌(文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위은숙 |
[정의]
고려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현풍(玄風). 호는 석천(石川). 아버지는 밀직부사 예부 상서(密直副使禮部尙書)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고려 후기 밀직부사 대사헌 첨의평리(密直副使大司憲僉議平理)를 지낸 조운경(趙雲卿)의 딸 풍양 조씨(豊壤趙氏)이다. 아들은 곽충관(郭忠貫)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판도판서 대중대부 상서좌성(版圖判書大中大夫尙書左丞)을 역임하였다. 손자는 곽부(郭郛)로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고 포산군(苞山君)에 봉하여졌다. 증손자는 곽거인(郭居仁)으로 아우 곽유의(郭游義)와 함께 모두 벼슬이 전공 판서(典工判書)에 이르렀으며, 아우 곽유예(郭游禮)는 벼슬이 공조 전서(工曹典書)에 이르렀다.
[활동 사항]
곽원진(郭元振)은 충렬왕(忠烈王) 대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306년(충렬왕 32) 정동행성에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성절사를 파견할 때 당시 총랑(摠郞)이었던 곽원진이 갔다. 1310년(충선왕 2) 좌대언(左大言)을 거쳐 성균 제주 진현관 제학(成均祭酒進賢館提學)에 이르렀다.
[묘소]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박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926년 8월 후손들이 ‘진현관 대제학 문헌공 석천 곽 선생 신도비(進賢館大提學文憲公石川郭先生神道碑)’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