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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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熙國 |
영어공식명칭 | Kim Huiguk |
이칭/별칭 | 윤약(允若),낙하(落下)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삼조 |
[정의]
개항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윤약(允若), 호는 낙하(落下). 증조할아버지는 김경운(金慶運), 할아버지는 김규섭(金奎燮), 아버지는 김준동(金駿東), 외할아버지는 박경오(朴慶五)이다.
[활동 사항]
김희국(金熙國)[1824~1901]은 1824년(순조 24)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서 출생하였다. 35세가 되던 1858년(철종 9) 무오(戊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9위로 합격하였다. 승문원 부정언(承文院副正言) 및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1865년(고종 2)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이 되었고,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과 교리(敎理)에 임명되었다. 1883년(고종 20)에 흥해 군수(興海郡守)로 부임하였다. 1884년(고종 21)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나자, 벼슬을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1894년(고종 31) 조정에서 다시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1901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