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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매남으로 터를 잡고 매계재를 짓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C010102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정의]

바깥매남으로 터를 잡고 매계재를 짓다

[농지를 찾아 바깥매남으로]

매계 김주 선생이 안매남에 터를 잡은 후 그의 5대손 둘째인 김성록이 개척하였다고 전해진다. 김주 선생이 개척한 안매남은 용계천과 만나는 산능선이 마을로 가는 길을 가로 막고 있어 외부에서는 마을을 확인할 수 없는 요새와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주변으로 농지가 없고 50도가 넘는 경사로는 마을을 확장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안매남 5~6 가구들은 비탈진 경사로를 중심으로 양 갈래 가지처럼 뻗은 좁은 토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한계로 사실상 식구가 늘어나면서 집을 짓고 분가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용계천 아래 바깥매남과 다른 곳으로 찾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 10대조 할아버지가 정착했을 때 그 후손들이 밑에 5대손이 둘째아들이 살림나가지고 정착한 마을이라요. 여기가. 그라마 지금 황토방 보이죠 저기 내 조카가 살고 있는데. 고게 우리 5대조 할아버지 여기서는 제일 맏집이죠. (김0생)

반면 바깥매남은 용계천을 따라 형성된 계곡에 위치한 마을이다. 용계천을 따라 형성된 비교적 넓은 농지들이 자리를 하고 있으며, 식수 확보도 쉽다. 하지만, 계곡 인근에 위치함에 따라 산사태와 계곡 범람에 따라 각종 자연재해에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실질적으로 정대1리 자연마을 중 태풍과 각종 자연재해에 가장 피해를 많이 입었던 곳은 바깥매남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해김씨 삼현공파 후손들 매계재를 짓다]

김주의 5대손 둘째가 터를 잡았다고 하는 바깥매남은 현재 약 10여 가구가 생활한다. 과거 마을의 인구가 많았을 때 70여 가구가 생활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외지로 떠나고 홀로 사는 독거노인과 주말에만 찾아오는 빈집 등을 포함하여도 10가구 넘지 않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귀농한 몇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 김해김씨 친인척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때는 여기 집성촌이었어요. 저하고 위에 하고 몇집 2동에 몇집하고 엎쳐서 72가구 되었어요. 그 후로 점차적으로 농사 서말쓱 모아가지고 선조들이 쌀이 한 50가마 모아가지고 그래가지고 저 재실을 지었어요. 저게 우리 재실인데. 저게 매계재거든. 이기 매라고 하는 것은 원래는 말은 여기 매화가 많았다고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가 매화 매자에 시내 계자에 호가 매계가 되어 호가 매계였어요. (김0생)

바깥매남에는 김해김씨 제사 매계재가 위치한다. 매계재는 1967년 건립하였다.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149-3번지에 위치하는 매계재는 김해김씨 가락선원 삼현파 매계 김성록(金聲祿)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재실이다. 바깥매남교를 건너 바깥매남 마을회관 뒤쪽 청룡산 능선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재사이며, 주변으로 낮은 돌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마을을 향해서 나무 대문이 세워져 있다. 매계재는 건립 당시 바깥매남에 거주하는 후손들의 도움으로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후손들은 돈과 쌀 등을 모아 재실을 건립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당시 이를 주도한 사람들은 김성록의 10세손(世孫) 생곤, 명곤, 중곤, 재곤, 두범(生坤, 明坤, 重坤, 在坤, 斗範)이라고 전해진다.

[매계재의 모여 향사를 올리다]

매계재에 배향되어 있는 김성록은 앞서 안매남에 입향 한 매계 김주와는 다른 인물이다. 김해김씨 삼현공파 족보에 의하면 김성록(金聲祿, 1628~1696)은 수로왕의 60세 손으로 호는 매계(梅溪)이다. 1628년(인조 6) 현재 하양면 토평리에서 태어나 69세가 되던 해인 1696년(숙종 22) 3월에 이곳 바깥매남으로 이주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주할 당시 서른 살된 아들 명장과 11살 된 손자 형자를 데리고 정대리 매내미(현 바깥매남) 시냇가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1696년 그가 정대리로 이주 뒤 9월에 작고하였으며 그 후에 아들 명장은 통훈대부(정3품)에 오르고 이후 손자 형자는 통정대부(정3품) 절충장군중추부사(折忠將軍中樞府事)를 지냈다고 알려져 있다.

매계재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5일 김성록의 후손들이 모여서 함께 향사를 올렸다. 참여하는 인원은 약 50~100여명 정도이다. 향사의 날은 음력 10월 15일로 정해져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젊은 사람들의 참여를 높이고 참석하는 사람들의 편의성을 위하여 음력 10월 15일이 있는 그 주간의 일요일로 날짜를 확정하였다. 2016년 향사는 11월 19일(음력 10월 20일)로 예정되어 있다.

[참고 문헌]

경상북도•경상북도향토사연구협의회,『경북마을지』(경상북도향토사연구협의회, 1991)

달성문화원,『달성마을지』(달성마을지편찬위원회, 1998)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동양고전번역 용어용례사전 사이트(http://www.ctdic.kr/)

[정보 제공자]

김0생(남, 1940년, 달성군 가창면 정대1리 바깥매남)

김0고(남, 1938년, 달성군 가창면 정대1리 바깥매남)

김0호(남, 1945년,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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