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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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社會正義具現- 爲- 慶北學生協議會 |
이칭/별칭 | 3개대학 연합시위투쟁,9·4투쟁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윤정원 |
설립 시기/일시 | 1979년 9월 4일 -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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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계명대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구벌대로 1095[호산동 산2-1] |
성격 | 학생운동 |
설립자 | 경북대 임광호[영어교육76]|하종호[공업화학77]|정동남[농대77]|계명대 권오국[영문77]|김균식[경제학77]|임진호[영문 78]|영남대 이창주[축산 77]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반유신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지역 3개 대학 대학생들이 결성한 학생 단체.
[개설]
유신체제 말기 대구 지역 대학생들은 단일한 조직을 통하여 반유신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경북대학교,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등 3개 대학이 연합하여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의 결성은 이후 대구 지역 학생운동 전개 과정에서 수시로 연대 투쟁 단체를 조직하는 단초가 되었다. 1979년 9월 4일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 명의로 개최된 대규모 3개 대학교 연합 시위는 대구 지역에 반유신 운동의 여론을 환기시켰다.
[설립 목적]
1978년 두 차례에 걸친 78경북대민주구국선언사건 이후 많은 학생이 구속되거나 강제 징집을 당하였고, 경찰과 학교 당국의 학내 감시는 한층 강화되어 대구 지역 대학생들은 1979년 상반기까지 별다른 투쟁을 전개하지 못하였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는 계명대학교,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의 학생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반유신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대학교의 임광호[영어교육 76], 하종호[공업화학 77], 정동남[농대 77]과 계명대학교의 권오국[영문 77]과 임진호[영문 78], 영남대학교의 이창주[축산 77] 등은 1979년 9월 4일 오전 11시 45분을 기하여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 명의로 3개 대학 연합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는 1979년 9월 4일 계명대학교에서 3개 대학 연합 반유신 운동을 시작한 후 가두 투쟁까지 이어 나갔다.
시위 과정에서 YH사태의 진상규명, 노동3권의 유보 조항 철폐, 유신헌법 철폐, 구속 민주 인사 석방 및 강제 휴학·강제 입영의 중지, 학내 모든 경찰 요원 추방 등 6개 항의 결의 사항이 담긴 선언문을 3개 대학 연합으로 발표하였다. 9월 4일 전개한 시위에서 2,000명이 가두로 진출하여 시위를 하다가 87명이 연행되었고 7명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가 전개한 반유신 시위 이후 경북대학교와 영남대학교는 휴교 조치에 들어갔고, 계명대학교에서는 더욱 시위가 확산되어 1979년 10월 24일 반유신 시위에 계명대학교 학생 2,000 명이 참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경북학생협의회는 유신정권 말기 대학 간 연합조직을 결성하여 유신정권의 반민주성과 반노동성에 저항하는 연합시위를 전개하며 대구 지역 학생층과 재야 세력의 반유신 운동을 고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