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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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공립소학교 학생들이 결성한 계몽운동 단체. 개진협회는 1898년 대구공립소학교 학생들이 근대적 학문 토론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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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한제국 내장원이 대구와 경상북도의 광산 관리와 광세 징수를 위하여 만든 조직. 경상북도 금광위원(慶尙北道金鑛委員)은 대한제국의 내장원(內藏院)이 보유한 대구와 경상북도의 광산을 관리하고 광세(鑛稅)를 징수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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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대구에서 결성된 여성 계몽운동 단체. 교육부인회(敎育婦人會)는 대구에서 계몽운동을 펼친 이일우의 계수(季嫂) 김화수(金和秀)를 비롯한 100여 명의 회원이 결성한 여성 계몽운동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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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설치된 권업모범장의 출장소. 권업모범장은 일제 통감부가 일본식 농법을 한국에 이식 및 보급하여 한국의 농업 생산량을 늘리고자 설치한 농사 시험 기관이다. 통감부는 1906년 4월 27일 「통감부권업모범장관제」[칙령 제69호]를 발포하고 권업모범장을 전국적으로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1906년 6월 15일 경기도 수원에 설치한 권업모범장을 시작으로 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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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에 국채보상운동을 전담하기 위하여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는 국채보상운동을 전담하기 위하여 1907년 2월 21일 대구에서 결성된 단체로 의연금 모금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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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대구에서는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와 다른 별개의 계몽 운동 단체로서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가 설립되어 교육 운동과 경제 운동을 전개하고, 국채 보상 운동을 발기하여 전국적인 경제적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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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8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1906년 8월 대구에서는 대구 광문사(大邱廣文社)와 다른 별개의 대구 광학회(大邱廣學會)가 설립되어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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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설립된 경제단체. 대구 한약업자 조합(大邱漢藥業者組合)은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내 한약종상(漢藥種商)들이 대구 약령시(藥令市)의 진흥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대구 한약업자 조합은 대구한약상조합, 대구한약업조합, 대구한약자조합, 대구한약조합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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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치안 행정기관. 대구경찰서(大邱警察署)는 일제강점기 대구·경상북도 일원의 치안 행정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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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사설 기생조합. 대구기생조합(大邱妓生組合)은 1909년 4월 일제에 의하여 관기제도가 폐지되자 경상감영과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 관청에 예속되어 있던 교방(敎坊)의 관기(官妓)들이 사회로 진출하게 되면서 영업과 권익 보호를 위하여 결성한 사설 기생조합이다. 대구조합, 대구기생조합소, 대구예기조합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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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6월 대구에서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결성한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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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일제가 한국의 농업과 공업을 금융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대구에 설립한 은행. 대구농공은행(大邱農工銀行)은 1906년 일제가 금융 경색 해결과 재정 기초 확립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한제국의 농업과 공업의 개량 및 발달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워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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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의 일본거류민회가 대구읍성을 허문 후 읍성 자리에 도로를 건설하기 위하여 구성한 조직. 대구도로위원회는 1906년 11월에 대구 일본인 거류민단이 대구읍성을 철거한 뒤 읍성 자리에 도로를 건설할 목적으로 구성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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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설립한 객주 조직. 대구상무소(大邱商務所)는 국채보상운동 이후 대구의 자본가들이 조선인 자본가의 이익을 구현하는 동시에 대구일본거류민단과 일본인상업회의소에 대응할 목적으로 설립한 객주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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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대구일본거류민단의 소방 단체. 대구소방조(大邱消防組)는 대구일본거류민단이 거류지(居留地)의 화재 방지 및 진압을 위하여 조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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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대구광학회에서 자치 조직으로 설치한 기구. 대구시의소(大邱市議所)는 1906년 대구광학회가 대구부민의 지식을 개발하고, 민권(民權)을 부식하기 위하여 결성한 자치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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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에서 일본인이 창간한 신문. 1900년대 말 대구 지역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있었다. 1908년 9월 대구일일신문사와 대구신보사가 통합하여 대구부 경정 2정목[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에 대구신문사조합을 설립하고 『대구신문(大邱新聞)』을 창간하였다. 가와이 아사오[河井朝雄]는 대구일일신문사, 가토 이치로[加藤一郞]는 대구신보사의 이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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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일제가 어음의 유통 저지 목적으로 설치한 금융기관. 일제는 1905년 화폐 정리 사업 직후 금융제도를 은행의 신설보다는 창고 및 어음 지급보증 등 전통적인 금융 기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추진하였다. 일제는 1905년 9월 「수형조합 조례」 및 「약속수형 조례」를 공포하고, 한국의 전래 어음의 유통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어음조합을 설치하였다. 대구어음조합[이칭 대구수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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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서 우편 업무를 담당한 기관. 대구우편국은 대구 지역의 우편 및 통신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1905년 10월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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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설치된 통감부의 지방 통치기관. 대구이사청(大邱理事聽)은 1906년 대구부 동상면 포정동의 경상북도관찰부(慶尙北道觀察府) 내 선화당(宣化堂)에 설치된 통감부(統監府)의 지방통치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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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거류민회는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자치단체의 기초를 확립하고, 부산 주재 일본 영사관의 감독 아래에서 일본인들의 행복을 도모할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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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단체. 대구일본동포회는 1904년 6월 부산 일본영사의 감독 아래 대구 거주 일본인들의 자치를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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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결성된 대구 최초의 일본인 자치 조직. 대구일본인회(大邱日本人會)는 1900년 11월 부산영사관 서기 이쿠다[生田端正平]가 대구를 방문하여 대구 거주 일본인과 함께 일본인 단체 결성에 대하여 상의를 한 뒤 일본인의 친목 도모와 정착 안정에 목적을 두고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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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대구에 설치된 임업 관련기관. 대한제국 정부는 1905년 전국에 걸쳐 산림조사를 하였다. 산림 정비가 완료되면 자연스럽게 하천 정비가 이루어지고, 도로 개보수와 광업·수산업의 발달이 쉬워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6년 일본의 산림 전문가를 초빙하여 임업 관련 업무를 맡겼다. 1907년에는 수원, 평양, 대구 3곳에 수묘양성소(樹苗養成所)를 설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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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세무와 재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행정기관. 1908년 조선의 전체 인구는 978만 1671명, 호수(戶數)는 233만 3087호, 면적은 1만 4000리, 조세 수입은 1034만 604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233만 3249명, 호수는 55만 8155호, 면적은 2,104리, 조세 수입은 260만 3447원이었다. 경상도의 인구는 조선 전체 인구에서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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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서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한 전신 사무국. 대구전보국(大邱電報局)은 대구 지역의 전기통신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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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기상 및 기후 관측 기관. 대구측후소(大邱測候所)는 대구 및 경상북도 지역의 기상 및 기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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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신설된 군대 조직. 대구헌병분대(大邱憲兵分隊)는 1905년 9월 러일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러·일 간에 맺은 강화조약인 포츠머스조약을 계기로 편성된 주둔군 헌병대에서 비롯되었다. 주둔군 헌병대는 대구를 비롯한 서울·부산·인천·평양 등 12개 지역에 헌병대 분대를 설치하고, 그 밑에 56개의 헌병분견소를 두었다. 1906년 3월 주둔군 헌병대는 통달(通達) ‘제한 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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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된 유사 자치 기구. 대한제국기 대구시청(大韓帝國期大邱市聽)은 윤영섭 등이 민의의 자치 기구를 목적으로 하여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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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설립되어 활동하였던 애국계몽운동 단체. 대한협회는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 강요에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통감부에 의하여 해산당한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간부들과 천도교의 주요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애국계몽운동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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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 달성 지역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계몽 운동 단체. 대한협회 대구지회는 1907년 국채 보상 운동 이후 대구, 달성 지역의 계몽 운동 세력이 설립한 계몽 운동 단체로서 대구 광문사와 대구 광학회를 역사적으로 계승하면서 지역에서 교육 운동과 실업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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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 최초의 계몽운동 단체.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 등 개화파 지식인들은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이어 1896년 7월 독립협회를 창립하였다.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창립 사업으로 하여 발족한 독립협회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외세의 배격, 내정 개혁을 주장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건립하였으며, 1898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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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달성친목회가 대구에 설립한 강습소. 법률야학강습소(法律夜學講習所)는 청년층의 친목 도모와 교육 및 교육의 발전을 목적으로 대구에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인 달성친목회가 대구 지역 사람들을 대상으로 근대 법률 체계와 의미를 계몽하기 위하여 1908년 9월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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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일본 군대. 보병80연대(步兵八十聯隊)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기 위하여 2개 사단과 함께 대구에 배치된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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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영천에서 조직되어 대구·현풍 등 영남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 부대. 산남 의진(山南義陣)[현풍]은 중추원 의관(議官) 정환직(鄭煥直)[1844~1907]이 의병을 일으켜 국권 회복을 도모하라는 고종의 밀명을 직접 받고 일으킨 의병 부대이다. 을사조약 이후 고종은 비밀리에 측근들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당부하는 밀조를 내렸다. 이강년(李康秊)·고광순(高光洵)·노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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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서 활동한 의병부대. 산남의진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1843~1907]이 대한제국의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를 내용으로 한 밀지(密旨)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와 함께 경상북도 영천시를 중심으로 기병한 의병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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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의 상인 자본가들이 설립한 상회사. 수창사(壽昌社)는 1898년 대구에서 설립되어 1935년 무렵까지 영업 활동을 펼쳤다. 수창사는 낙동강 뱃길을 이용하여 어염미두(漁鹽米豆) 무역을 펼치던 대구의 상인 자본가층이 결성한 근대 초기 형태의 상회사(商會社)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사무소로도 기능하였다. 수창사의 사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1,000냥 이상의 투자금을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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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의 우현서루 내에 있던 학당. 시무학당은 우현서루(友弦書樓)를 기반으로 근대 지식 개발 증진과 시무의 지혜를 발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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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 우현서루(友弦書樓)는 1904년 대구 지역의 부자인 금남(錦南) 이동진(李東珍)이 개인 재산을 투자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자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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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광문사의 자치 조직으로 결성된 계몽운동 단체. 대구광문사가 주도하여 결성한 인민대의소(人民代議所)는 민지개발(民智開發)과 민권을 부식(扶植)하기 위한 추진 기관이었다. 또한 대구광문사가 지향하는 바와 동일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치 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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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설립된 일본인들의 경제 단체. 일본인상업회의소(日本人商業會議所)는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의 상공인들이 상공업 발전과 친목 도모를 위하여 1906년 설립한 경제 이익단체였다. 일본인상업회의소는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 때까지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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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서 경상감영 객사 철거에 반대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직. 자위대(自衛隊)는 1908년 말 경상북도 관찰부가 대구공소원[기관]을 건축하기 위하여 경상감영 객사를 철거하겠다고 하고, 대구일본거류민단 또한 객사를 철거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며 경상감영 객사를 지킬 목적으로 1909년 1월 대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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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대구 지역에 설립된 근대식 의료기관. 자혜의원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관립 병원이다. 1909년 2월 청주와 전주를 시작으로 1910년 1월 함흥에 설립되었고, 1910년 9월에는 대구를 비롯하여 수원, 공주, 평양, 춘천, 진주, 경성, 의주, 해주, 광주 등으로 확대하여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전국 46곳에 자혜의원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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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에 대구 지역에서 있던 출판사.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는 1907년 무렵부터 1930년대 초까지 대구 지역에서 목판 방각본(坊刻本) 및 납활자 서적을 출간하였던 출판사이다. 재전당서포의 발행인은 김기홍(金璂鴻)이었고, 인쇄인은 김기홍의 아들인 김경발과 이재수, 신효연 등이 있었다. 재전당서포는 대구 동상면 후동[현재 중구 포정동]에 있던 출판사이며 대구 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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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대구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채보상운동 여성단체. 대한제국 시기 일본으로부터 빌려 쓴 1,300만 원을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인 국채보상운동에는 여성들도 적극 참여하였다. 대구에서는 중구 남일동 109에서 1907년 2월 23일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가 결성되었고, 1907년 6월에는 중구 남산동에서 대구남산국채보상부인회가 결성되었다. 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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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경상북도 현풍군에서 설립되어 활동한 국채 보상 운동 단체. 1907년 1월 대구의 대동 광문회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발기된 이래 당시 경상북도 현풍군[현 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도 국채 보상 운동을 위해 단연보상회가 설립되어 활동하였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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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대구에 있는 경상감영의 부속 건물인 객사를 철거한 사건. 대한제국 시기 일제는 경부선 철도의 부설과 을사조약을 계기로 본격적인 내륙 침탈에 나섰다. 철도 부설과 함께 대구로 들어온 일본인들은 경상북도 관찰부와 함께 대구읍성을 헐어 버리고 난 뒤 경상감영의 객사 철거를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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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경상북도관찰사 박중양이 주도하여 만든 대구 최초의 십자도로. 을사조약을 계기로 1906년 대구에 이사청이 설치된 이후 대구읍성이 헐리고 대구읍성이 헐린 자리에 순환도로가 조성되었다. 이어 경상감영 객사가 철거되었다. 그 뒤 경상북도 관찰부의 관찰사 박중양(朴重陽)은 시가지 간선도로 개설 사업을 벌이면서 경상감영을 관통하는 십자도로 건설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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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2월 대구에서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외교 분쟁. 교안(敎案)의 문자적 의미는 종교와 관련된 분쟁 및 사건, 혹은 재판 안건이라는 뜻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서양 종교에 대한 반대 투쟁을 지칭한다. 한국에서는 1886년부터 1908년 사이에 적게는 141건, 많게는 305건의 교안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교안(大邱敎案)은 1891년 2월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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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대구의 경상북도관찰부와 일본인 사회에 의하여 추진된 대구읍성 철거. 대구읍성(大邱邑城)은 일본인들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경상북도관찰부와 일본인 사회에 의하여 1906년 철거되었다. 대구읍성의 철거로 전통 도시 대구의 풍광은 식민도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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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월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대구, 부산, 마산을 방문하는 순행 중 대구를 방문한 사실.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남순(南巡)은 1909년 1월 신년 하례식 자리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졌다. 황제의 순행은 민심 안정, 지방 순시를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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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대구의 경상감영 객사에서 열리던 약령시를 남성로로 이전하여 설치 운영한 일. 대구 약령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인 17세기 중반부터 조정의 영시[대구 약령시의 약칭] 개시 통첩을 통하여 운영되었다.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 객사에서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보통 각각 10일 정도 열렸다....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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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달명의숙은 1906년 10월 경북 관찰부 관할인 낙육재(樂育齋)와 연계재(蓮桂齋) 소속의 전토를 합하여 설립한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달명의숙의 설립은 1906년 3월 새로 부임한 경북 관찰사 신태휴(申泰休)의 학교 설립에 대한 적극적 지원 정책의 결과였다. 신태휴는 경북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대구사범학교, 측량강습소 등을 설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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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초중등 과정의 근대 학교. 1899년 대구의 지역 유지들이 설립한 초중등 과정의 근대 학교이다. 달성학교는 설립 취지서에서 나라를 개명시키기 위해서는 근대 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강학, 교육과 기예 양성, 학문 증진 등을 달성학교의 설립 취지로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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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교육기관. 대구사립사범학교는 1906년 3월 경상북도관찰사 신태휴가 학교 설립에 매진하라는 대한제국 황제의 칙유와 1,000원의 하사금을 매개로 하여 달성군수 김한정과 함께 관덕정(觀德亭)[관덕당(觀德堂)], 고예재(考藝齋)를 수리하여 개교하였다. 관덕정은 대구읍성의 남문 격인 영남제일관 밖에 있었다. 대구사립사범학교 설립에 참여한 발기인과 기금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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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던 교육기관. 대구사립양성학교는 대구에서 근대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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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에 있었던 양잠 재배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경상도는 조선시대부터 잠업을 하고 있었으며, 대표적 지역은 함창·상주·문경이다. 경상도는 양잠 재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첫째, 양잠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서리·습기 피해가 거의 없었다. 둘째, 낙동강 연안 수백 리에 걸쳐 있는 황무지는 뽕나무를 키우기에 적합하였다. 마지막으로, 공기가 건조하여 누에똥을 제거하는 횟수가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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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수창학교는 설립 취지서를 통하여 신학(新學)의 교육을 강조하면서도 구학(舊學)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였다. 수창학교는 신구학문을 융합하여 근대 교육을 실현하려 하였다. 구체적으로 인성과 덕육에 대해서는 전통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목표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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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중등학교. 협성학교는 대구에서 관계와 지역사회가 연대하여 개교한 근대 중등학교이다. 협성학교의 교육목표는 1906년 3월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내린 “오늘날의 급선무는 오직 학교를 일으켜 인재를 양성하는 길만이 밭을 일구고 재물을 불리는 도구가 될 것이다”라는 교육 진흥 조칙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1907년 『황성신문』은 협성학교의 설립 취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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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대구 지역에 있던 근대 학교. 흥화학교는 1899년 12월에 흥화학교 지교로 설립되었다. 흥화학교 지교는 1909년 9월 6일 흥화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10년 10월까지는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